명랑 家庭史/2001~옛날

1998~2000 군대

하윤하엘 아빠 2023. 9. 26. 01:07

"9872002109!"

요새는 많은 정보들을 핸드폰에 다 저장하니까 외울필요가 없어지긴 했는데... 아직까지도 옛날에 외우던 몇몇 번호나 주소와 같은것들이 내 머리속에 여전히 기억되고 있는게 신기하다. 군번이 그 중 하나인데 잠을 자다가도 관등성명과 함께 튀어나오던 그 번호가 아직도 선명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형준이와 경민대학에 들어가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술마시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날도 마찬가지로 형준이와 실컷 늦게까지 술마시고 들어와서 잠을자고 있는데 아침에 아버지가 깨워서 영장이 나왔다고 하셨다.
당시 행정병으로가고싶어서 워드프로세스자격증을 준비하고있었고 군대를 연기할수도있었지만.. 훈련소가 우리나라 최후방인 부산 해운대에 있는 53사단으로 나와서 그냥 순순히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것같다.(IMF로 어려울때라 그때 잘간것 같다)

어떤이들은 군대에서 시간만낭비하고 아까운 시간뿐이었다고 하는데..당시에 어차피 아무런 계획/미래없던 나에게 군대는 자신감과 함께 군대에서 지내버린 시간들을 제대하고 열심히해서 보상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것같다.

생전해보지 않았던 훈련에 무릎이고 팔꿈치고 성한곳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 나름 해내고 있는 나에게 자신감이 생겼다

 

내무반 동기들, 처음엔 서로 기싸움하고 튀어보려하다가 다 부질없음을 깨닫고 서로에대한 전우애가 생긴다 ㅎㅎ

 

훈련소 혹한기 훈련, 저 작은 A텐트에서 어떻게 3명이나 들어가 밤을 지냈는지 신기하다. 새벽에 일어나 꽝꽝 얼어버린 전투화 발을넣어 녹이고 식판에 밥과 국을 뜨면 5분도 안되어 얼음같이 차가워지고.. 하지만 그곳의 모든 고통을 잊게 만들었던것은 장산을 돌아 부대로 복귀하는 30km행군이었다. 첫행군에서 완전군장이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은 정말 참기 힘들었다.

 

신병훈련 수료식, 6주간의 훈련기간 그곳에서 든 정이 뭔지 다들 눈물이 나고 서로를 격려하며 꼭 잊지말고 연락하자고 했지만.. 아무도 연락 안한다 ㅎㅎㅎ 

 

이등병에겐 하늘같이 높은 상병,병장님들.. 다행히 좋은사람들만나서 즐거운 부대생활한것같다

 

해안철조망공사를 한번 나가면 1달가량을 외부막사에서 지냈는데... 나중엔 내부막사 복귀가 싫어지고 내부막사생활하다가 외부막사를 나가려고 하면 그것도 싫었다. 군대에서의 2년2개월은 무엇을 하던지 다 힘들고 쉽지 않다 

 

달콤한 4박5일 이등병 첫휴가 (당시 형도 공익근무하던 중이었나보다^^) 보통은 첫휴가를 보내고 복귀하면 다시 부대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난 당시 무장공비가 부대인근지역의 산에 침투했다하여 바로 작전지역으로 투입되었었다. 덕분에 적응시간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내무반, 대민지원

 

그림을 그린다고 좋았던것은 군대포스터 경연대회참가기회를 얻었고 포스터그린다고 작업/훈련열외하고, 입상해서 각각 4박5일의 휴가를 얻었으니 맏고참들에게 욕을 먹을때도 있었다.

 

연병장 사열대에 그려진 그림은 누가 그렸었는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엄청난 퀄리티였다

 

야간훈련

 

마지막 제대할때 동기들 후임들과 인사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마침 비상이 있어서 부대원들이 작전지에 출동해있었고 혼자 부대에 남았다가 쓸쓸히 제대했다.^^;
고참들이 제대할때는 나에게도 저런 순간이 올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그 순간은 빠르게 다가왔고 거창한 뭔가가 아니라 마치 꿈을 꾸었던 것처럼 내가 언제 군대에 있었냐는 듯이 갑자기 사회로 돌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