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 어찌어찌 하다보니 5년 가까이 한국에 가질 못했다. 유학생인지라 경제적인것도 물론 어려었지만, 시간적 여유또한 없었으니까 늘 기회가 없었는데 처남의 결혼식이 있어서 들어가게되었다.
향수병 까지는 아니었겠지만... 그 5년간 독일에서 생활하며 한국에대한 그리운것들이 생겼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 어렸을때 살던 동네 휘경동이다. 가끔 꿈속에서 내가 어린시절의 꼬마가 되어 어머니와 낯익은 골목 반찬가게들을 돌아다닐정도였었다.
태어나서부터 고등학교2학년때 까지 이곳에서만 살았었으니 참 추억이 많은 동네이다. 지금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도 청량리라 멀지않은 바로 옆동네이긴 하지만, 이사를 떠난 이후 차타고 이 동네를 많이 지나치기는 했어도 구석구석 살펴볼생각은 하지 못했던것 같다. 어렸을때 어머니와 시장을보고 형이랑 오락실을가고, 친구와 뛰어놀던 그런 추억이 담긴곳이 지금살고있는 독일과는 다르게 급변하고 사라진다는것 아쉬웠고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노트에 "한국에서 할일"이라고 적어까지 놓았었다.
회기역 주변
지금은 부동산으로 바뀐 문방구자리, 태권도장으로 바뀐 동산유치원, 방앗간자리엔 청과물점이 들어왔고 반찬가게는 정육점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예전에 동네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철물점이 그대로 있어서 신기했다. 많은것들이 변했지만 그래도 깨볶는 냄새가 고소했던 방앗간, 파리가 많았던 반찬가게, 문방구집 또래녀석과 다투던 일, 철물점집 친구와 PC오락 디스켓을 교환했던것들이 고스란히 생각난다.
와아..여긴 아직도 있다. 바하피아노 원장선생님께 초인종을 눌러 인사드릴 용기는 없었지만 보는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맨날 가서 보물섬과 새벗을 읽다가 피아노 기다란의자에 누워 자고 있으면 원장선생님이 나를 살짝 들어서 원장실에 이불깔고 눞혀주셨다. 결국 바이엘 하권도 못마쳤다.ㅡㅡ;
집에 올라가는 길, 저 길끝에는 휘경중학교가 있고 거기서 또 한참을 올라가면 옛날 살던집이 나온다. 어렸을때 하교길에 올라가는 이길이 길게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정말 너무 짧아서 놀랐다.친구와 함께 거의 매일같이 모래장난을 하던 모래밭
여기쯤 오면 "아~ 드디어 집에 다 왔다." 하던곳이다. 집이 학교랑 멀어서 항상 걸어서 45분거리를 다녔으니까 어린나이에 꽤나 먼거리였다. 여기서 부터(시립대후문) 경희국민학교까지 걸어다녔으니..어른이 된 나에게도 꽤나 먼거리다. 사진의 왼쪽의 시멘트덩어리로 불룩튀어나온것은 예전보다 작아지긴 했지만(밑에 아스팔트가 덮혀서..), 형과 나는 아직도 이게 남아있는것을보고 놀랐다. 이게 왜이렇게 튀어나온건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우리 동네꼬마들의 놀이터, 만남의 장소였다. 누가 가장꼭대기에 기어 오를수있는지를 시합했었고, 꼭대기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기도 했었던 시멘트 덩어리.
동네가 예전에 비해 많이 세련되어져서 좀 낯설긴 했지만, 집으로가는 골목어귀, 이곳에서 병아리 옷을입고 세발자전거를 타고 놀았던 기억도 있고 친구들과 놀던 기억이 난다. 골목 구멍가게가 아직도 있는게 신기하다.
저집에는 일주~,이주~,삼주~ 하면서 놀렸었던 김일주라는 애가살았었고, 그 뒤로 이사온 형은 콧구멍으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중학교때쯤에는 저집의 어떤 대학생누나한테 수학과외를 받았었고.. 한번은 아버지차에 앉아있었는데 아버지가 깜박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지 않고 집에들어가셨다가 차가 미끄러져 내려 저 집대문을 들이받은 일도 있었다. 어렸을때라 어찌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눈만 껌뻑껌뻑거리다가 대문옆에 연탄재 잔뜩쌓인것과 대문을 박았었다. 저 집뒤에 보이는건 휘경중학교, 항상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는데 아쉽게도 지금은 방학이라 조용했다. 햇살 잘 들어오는 창가에 이불깔고 누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멀리서 중학교에서 학생들 뛰어노는소리, 옆집누나가 테잎 무한 반복하면서 따라부르는 노랫소리, 드르륵 드르륵.. 앞집 재봉틀소리, OO야~ 노올자~, 계란이 왔어요 싱싱한 계란이 한개에 십원 한판에... 정말 여러가지 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었다.
헉...정말 이거 보고 헉! 했다. 이.. 이게 내가 어렸을때 살던 집이라니..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 담장 없애기 시범동네 같은것에 선정되어서 집집마다 담이 다 없어졌다. 원래는 집집마다 길쭉한 창같은것이 달린 높은 담장에 철문이 하나씩 있었는데... 학교갔다와서 집에 아무도 없으면 항상 담을 넘어야 했다.(중학교쯤 되니 문을 발로 뻥차면 열리더라..어머니한테 혼나긴했지만.) 담이없는 덕분에 예전에 살던집을 좀더 가까이 자세히 볼수있긴했지만 대문앞에 있던 작은계단. 첫친구 재호와 장난감차를 가지고 놀던 그 작은계단이 없어져서 아쉬웠다. 내 상상속에는 우리집 마당이 엄청 컸었는데, 이렇게 작다니, 아니 마당이라고 부를만한 공간도 없다...것참 몸이큰건가?
그래도 집 한옆에 낯익는것들을 발견했다. 집 마당에 있던 현무암, 집안에 굴러다니던 돌들. 정말 이런것들을 기억하는게 나도 신기했지만, 정말 돌맹이 하나하나가 너무 낯익고 기억이 난다. 아~ 저 돌 하나 몰래 집어올껄 그랬나?^^; 그러고 보니 우리집에 와본 친구들은 몇명 않된다. 김종호 디자인 숙제한다고 와서 같이 거의 밤을 새워서 숙제를 했는데, 결국 다음날 허접하게 해왔다고 또 맞은 원영이, 또 우리집에 오자마자 삶은계란 해달라고 조르던 상수, 경태, 그리고 석이였나? 도영이였나?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형준이가 이집에 온적이있나 모르겠네. 맨날 하교길에 우리집은 청량리라서 동대문에서 갈아타면 되는데 자꾸 창동에서 갈아타라고 생떼를 쓰던녀석. 그 생떼에 말려서 몇번 창동까지 갔었다.ㅡ.,ㅡ
동네 뒷골목
위생병원 내려가는 길
명절때 가서 묵은 때를 벗기던 동네 목욕탕
교회 올라가는길 저길은 경사도 높지만 겨울엔 항상 얼어있어서... 연탄재를 깨놓고 벽을 잡고 진짜 조심조심걸어야 한다. 요새는 연탄재도 없을텐데 어떻게 하려나? 예전에 학교 하교길에 저 길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용돈 5,000원을 받은 기억이 난다.
어렸을땐 항상 사람이 바글바글하던 오락실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없고 먼지만 쌓여있다.
낯익은 과일가게 앞에 옛날 뽑기 기계가 있어서 반가웠다. 근데 요새애들도 이런걸 뽑긴 뽑을까?
옛날 주판학원, 전당포집, 맨날 만나면 치고박고 싸우던 곱슬머리 김수주가 살던 저 건물. 저 김밥천국은 옛날에도 김밥집이었다.(물론 이름은 달랐지만..) 물론 이사후로 이 동네를 지나칠때마다 참 많이 변했다는것을 알수있었지만... 저 성인용품점과 성인PC방은 어렸을때의 느낌을 회상하려고 갔던 내게 "이게 현실이다 이녀석아~~" 하고 비웃는것만 같았다.
원래 학교를 다니던길은 회기역을 지나서 올라갔었지만.. 뒷길로 해서 이문동쪽으로 해서 걸어갔다.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식을 했던 경희대학교 크라운홀
지금 방학이라서 학생도 없고 해서 썰렁한가? 원래는 학교에 하나밖에 없는 매점이라서 진짜 북적거리고 씨끄러운곳. 오른쪽 비둘기 그림그려진 한구석에서는,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예전 어떤 녀석과 사물주머니 돌려가며 코피터지게 싸우던 기억이 있다.^^ 경희 국민학교 올라가는 길과 난간도 그대로이고